한때는 신학대학원 입학 경쟁률이 높았고,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 신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로 넘쳐났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졸업생 수는 여전하지만, 사역을 하겠다는 신학생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 이유는 단순히 ‘믿음이 약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더 이상 이 구조 속에서 자신을 태우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1. 사례비로는 생활이 불가능하다
전도사 시절부터 시작되는 저임금 문제.
서울 기준 월세만 50~80만 원인데, 한 달 사례비가 70만 원인 경우도 많다.
결혼은 꿈도 못 꾸고, 부모의 지원 없이는 생존조차 어렵다.
신학생들은 현실을 미리 본다.
실습, 인턴십, 졸업 이후 사례비까지 경험해 보면 ‘이 길을 계속 가는 게 맞나’ 회의감이 들 수밖에 없다.
2. 사역이 아닌 ‘잡일’에 치이는 구조
신학생이 교회에 들어가면 사역보다 ‘허드렛일’이 먼저다.
주보 출력, 차량 운행, 식당 설거지, 행사 셋업…
‘배우기 위해 교회에 갔는데, 노동력 착취만 당했다’는 말은 이제 흔하다.
물론 훈련도 필요하고, 공동체를 섬기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정작 말씀 묵상, 설교 훈련, 영적 성장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사역의 본질보다 운영의 부속품이 된 느낌”
이 말에 많은 신학생이 깊이 공감한다.
3. 교회 내 위계와 폐쇄적 문화
부교역자는 담임목사의 하급 행정자처럼 취급된다.
신학생일 때부터 ‘무조건 순종’을 강요받는다.
질문도, 제안도, 표현도 자유롭지 않다.
심지어 복장, 헤어스타일까지도 간섭받는다.
이런 위계적 구조 속에서 창의성은 억눌리고, 소명의식은 약해진다.
요즘 신학생들은 조직의 수직 문화에 대한 민감도가 높고, 건강한 리더십과 소통을 원한다.
그러나 많은 교회는 여전히 ‘명령-복종’식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4. 사역자에 대한 존중 부족
성도들의 무관심, 담임목사의 비인격적 언행, 교회 내 갈등 등으로 인해
사역자의 존엄은 자주 무너진다.
젊은 사역자들에게 "니가 뭘 안다고?", "그건 아직 몰라도 돼", "네가 교회 걱정을 왜 해?" 같은 말이 일상처럼 다가온다.
공적 공간에서 무시당하고, 예배 중 이름 한 번 불리지 않으며, 회의에도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조.
이것이 계속된다면 누가 기쁨으로 교회를 섬기겠는가?
5. 신앙 공동체의 이중성
신학생들은 교회 안과 밖의 온도차를 민감하게 느낀다.
예배 때는 사랑을 말하지만, 회의 때는 험담이 가득하다.
사역자는 말씀을 전하지만, 뒤에선 정치로 평가받는다.
그들은 실망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내가 저 자리를 가고 싶은가?"를 자문하게 된다.
결국 "나는 이렇게 되고 싶지 않다"며 사역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신학생들이 사역을 포기하는 이유는 ‘소명 부족’ 때문만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열심히 보고, 너무 깊이 느껴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은 '목회자의 영광'이 아니라 '사역자의 존엄'이다.
다음 세대를 세우기 위해선, 지금 사역자를 대하는 교회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사역은 단지 ‘감당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감격으로 드리는 헌신’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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